오늘은 그동안 조금 뜸했던 신디사이저 관련 포스팅이다. 그리고 그것도 별로 많은 사람의 관심의 대상은 아닐 수도 있는 칩 이야기이다. 신디사이저의 칩.
근래 Evolver 시리즈에 이어 Prophet-5의 2000년대판이라고 할 수 있는 Prophet-08을 발표, 그리고 이어서 랙형도 발표하고, Musikmesse 2008에서 Best keyboard상을 수상하며 꽤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Dave Smith Instruments사(이하 DSI). 게다가 Prophet 08의 염가판이자 모노신디 데스크탑형이기도 한 Mopho, Mopho 의 4voices 타입인 Tetra.. 그리고 이어서 Mopho의 키보드 버전까지 발표하며 꾸준한 주목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네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제작사이다. (실제로 Mopho의 판매는 꽤 반응이 좋아서, 현재 생산된 양이 수요를 못 쫓아가고 있던 적도 있다고 한다.)
DSI사는 Sequential Circuit Inc.사의 후신이기도 하며 실제로 과거 SCI에서 prophet-5를 처음 발표했을 때처럼 근래의 신디사이저 제작사로서는 꽤 주목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Dave Smith옹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DSI사에서 6년전 처음 Evovler를 발표했을 때나, Prophet-08을 발표했을 때나, 모두 공통적으로 관심사가 되는 것이, 이른바 신세대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라는 것이다. 이름하여 네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최근 사용가능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들 가운데 이른바 빈티지가 아닌 '모던 혹은 네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는 그리 많지는 않다. 물론 소위 Garage 메이커 급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여러 종이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일단 제외하고, 명성이나 성능 자체를 검증받았다고 할 만한 것을 꼽아보자면, Moog사의 MiniMoog Voyager라인업이나 Little Phatty 라인업, 그리고 Studio Electronics사의 SE-1 라인업, 그리고 MFB, Analogue systems사나 Doefper 사의 모듈러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들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Jomox나 Future retro도 있고 한정된 종류나 양의 신제품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들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회사도 좀 더 있다. DSI사는 여기에 가세해 제2의 SCI격으로서 마케팅을 펼치며 과거의 명기를 최신의 기술과 개념으로 컴팩트하게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DSI사의 신디사이저들이 이슈가 되는 점에는 비단 신세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과거 Propeht-5를 포함해 명기들의 보고인 SCI사의 후신이라는 것이 꽤 영향을 크게 끼친 것이며 이에 더해 DSI사의 신디사이저들에는 과거 유수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명기들에 사용되었던 칩(IC)인 Curtis사의 칩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큰 이슈였다.
그런데 '커티스 칩'이라는 이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이 이름이 주는 의미는 '이미 과거속의 것'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커티스사는 현재 운영되는 회사가 아닐 뿐더러 현존하는 '커티스 칩'이라는 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생산되었던 재고품들이거나 중고라는 것이다. 신품이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회사가 이미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항간에는 모 신디의 제조당시에 알려졌던 이야기처럼 현존하는 커티스 칩들을 닥닥 긁어모아, 그것으로 Evolver도 만들고, Prophet-08도 만들고..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다. 소위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 대해서 좀 안다고 지칭하는 사람들은 DSI 신디사이저에는 커티스 칩이 사용되었고 어쩌구...하며 아예 정설을 만들어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에 신품 신디사이저를 만들면서 중고 칩들을 넣고 만든다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점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품질보증'이나 '품질관리' 측면이다. 퀄리티가 균등하게 보장되지 않는 중고물품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 데뷔하는 것은 일종의 신예 Garage 메이커들에서야 종종 보일 수도 있는 양상이지만, 나름대로 네임밸류를 가지고 다시 신디사이저 개발/제조사업에 뛰어드는 회사의 자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경영이나 관리 및 생산분야를 섭렵해 본 사람들은 더 잘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예를 들어 부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여러분은 중고부품이 사용된 신형 자동차를 단지 네임밸류만 가지고 좋아라하고 사겠는가?
그래서 나름대로 이러한 점들에 대해 의문도 있고, 관심도 깊고 해서, 해외의 여러 포럼의 사람들과 열심히 메일도 주고 받고 하며 이리저리 조사를 해보았는데, 그 결과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DSI 신디사이저에 들어가는 칩은 흔히 말하는 오리지널 'Curtis 칩'은 아닐뿐더러, 리이슈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 흥미로운 것은 이 DSI사의 신디사이저에 들어가는 칩은 기존의 커티스 칩을 기반으로 제작된 '신형 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칩을 만든 회사도 커티스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회사이다. 이 DSI사의 신디사이저에 들어가는 칩을 제작한 회사는 OnChip Systems라는 일종의 OEM 칩 전문 제작사인데 이 회사의 전신이 사실 Curtis사이다. Curtis사에서 사업전환을 하면서 만든 회사가 바로 OnChip Systems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남아있는 형태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역적으로도 DSI사하고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기도 하고.
DSI사의 신디사이저에 들어가는 칩은 OnChip Systems에서 DSI사를 위해 만들어낸 OEM 칩으로서, 모델명은 PA397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DSI 120 PA397'이란 OEM 품명이 붙은 IC이다. PA397 칩의 생산배경에는 Dave Smith씨가 OnChip Systems사를 설득해 DSI사의 새로운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 사용될 칩을 제작해주도록 부탁했다고 하는 사실이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PA397인 것이다.
이 PA397은 기존의 Curtis CEM3396 칩에 기반을 두고 제작된 이른 바 'Synth on a Chip' 방식의 칩이다.CEM3396 칩은 꼭 SID 칩처럼 칩 하나에 Waveshaper, VCF, VCA/EG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방식이다.
반면 통상 원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는 각 회로가 모두 각각 별도의 칩과 회로로써 구성된다. Pro-One을 예로 들자면 VCO 서킷에는 CEM3320, VCF 서킷에는 CEM3340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CEM 3396칩에는 칩 하나에 모두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CEM 3396 칩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CEM3396 칩이 사용된 신디사이저중 잘 알려진 것은 Oberheim사의 Matrix-6/-6R, 그리고 Matrix-1000 이 있다. 그리고 그다지 많이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그 소리나 성능만은 매우 우수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인 Cheetah MS-6이나 Marion MSR-2 등에도 사용된 칩이다. 이 Cheetah MS-6이나 Marion MSR-2 신디사이저들의 개발에는 모두 Oberheim 신디사이저의 핵심인 Tom Oberheim이 그 배경에 있기도 하다.
CEM3396 칩의 회로구성도
그런데, Curtis CEM3396은 사실 아주 최상의 선택은 아니다. (이는 다른 Curtis 칩도 마찬가지이다. 그 칩을 사용한 악기가 유명해지는 바람에 마치 Curtis Chip 이라는 이름이 무슨 마이다스의 손길 처럼 상징적인 명사로서 사용되는 것이 다분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Curtis Chip 자체에 대해 반감이나 비평을 하는 부류도 많다. Curtis칩의 호불호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룰 것이 아니므로 일단 생략한다.)
각설하고, 그렇지만 CEM3396칩은 제어나 회로구성이 비교적 쉽다는 이점이 있어 소위 말하는 커스텀 신디사이저 제작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칩이기도 하며 Oberheim사의 후기 신디 기종들에 많이 사용된 칩이다.
* PA397
다시, PA397 칩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자. PA397 칩역시 칩 하나에 Waveshaper(DCO), VCF, VCA/EG모두 포함이 되어 있으며 칩 1개당 오실레이터인 Waveshaper가 2개씩 있다.
Evolver시리즈와 Prophet 08 모두 1 voice당 아날로그 오실레이터가 2개가 할당이 되어 있고 각 voice당 칩의 개수는 다음과 같다.
Poly Evolver - 4 voices / PA397 × 8개 (총 4 보이스/ 칩 8개, 보이스당 2개)
Prophet 08 - 8 voices / PA397 × 8개 (총 8 보이스/ 칩 8개, 보이스당 1개)
Mopho - 1 voice / PA397 × 1개 (총 1 보이스/ 칩 1개, 보이스당 1개)
Tetra - 4 voices / PA397 × 8개 (총 4 보이스/ 칩 4개, 보이스당 1개)
아래의 그림은 이해를 돕기위해 필자가 위의 사실을 기반으로 그려본 그림이다. 단 Mopho나 Tetra는 비록 100%는 아니더라도 각각 Prophet 08의 1 voice, 4 voices 버전격이고 칩 구성에서 특이한 점이 없으므로 본 그림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여기서 Evolver 시리즈와 Prophet 08의 PA397 칩수를 비교해보면 Evolver 시리즈쪽이 voice 당 2개의 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Prophet 08(그리고 Tetra나 Mopho 시리즈)의 경우는 1 Voice 당 PA397칩 1개가 사용되는데, Evovler 시리즈는 1보이스의 모노신디이므로 당연히 PA397 칩 하나면, 2개의 오실레이터로서 1 voice를 구현하게 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칩이 두 개가 사용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즉 위의 구성을 보고 알 수 있듯이 모든 Evolver 시리즈는 1 보이스당 PA397칩을 2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판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보이는데, 기존의 Evolver 시리즈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핀이 Prophet-08에서는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CEM3396과 비교해보면 Prophet-08은 1 voice당 오실레이터가 2개 할당되어 있으니, PA397 칩 1개에도 CEM3396처럼 Waveshaper가 2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Evolver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Prophet 08에서 사용되고 있는 핀은 2번째 Waveshaper의 컨트롤을 담당하는 라인인 것이다. 이는 CEM3396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왜 Evolver시리즈에서는 1 보이스당 칩을 2개 사용하면서 각각의 칩에서 2번째 Waveshaper는 사용하지 않는(즉 해당 핀이 연결이 안되어 있음) 가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Evolver 시리즈의 스펙을 잘 보면 유추할 수 있다.
Evolver 시리즈와 Prophet-08과 다른 점 중의 하나가, Evolver 시리즈에는 아날로그 오실레이터외에도 Wavetable을 사용하는 디지털 오실레이터 2개가 더 있다. 그리고 각 오실레이터의 스테레오 루팅이다. Evolver 시리즈는 아날로그 오실레이터가 보이스당 총 2개로서 오실레이터 1, 2가 각각 좌, 우 채널로 hard-루팅되어 있다는 점이다. 필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오실레이터 1과 2를 물리적으로 채널을 분리해 만들기 위해서는 칩 하나의 Waveshaper 2개를 모두 사용해서는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PA397 칩 2개를 사용해 각 칩의 2번째 Waveshaper는 사용을 하지않고, 1번 Waveshaper만 사용함으로써 아예 이 2개의 칩의 오실레이터를 각각 좌, 우 채널에 Hard-routing 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필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Prophet-08은 그렇지 않다. 오실레이터나 필터가 Evolver처럼 좌/우 Hard-루팅되어 있는 구조가 아니므로, 칩 1개당 Waveshaper를 1개씩 사용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칩 1개당 2개의 Waveshaper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당연히 보이스당 1개의 PA397칩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Mopho의 PCB로서 위의 그림과 설명을 기반으로 유추해보면 이처럼 Mopho의 케이스를 열지 않고도 Mopho에는 PA397 칩이 1개만 사용됨을 쉽게 알 수 있다. Mopho는 100% 똑같지는 않더라도 Prophet 08의 모노포닉(1 voice) 버전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에 보다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종의 보드 해킹(S/W적 해킹도 필요하겠다..)을 해서 Evolver의 Voice를 2배로 늘릴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아이디어도 돌고 있긴 하다.(그래봤자 Evolver 데스크탑의 경우는 듀오포닉에 그치겠지만..^^).
칩과 관련해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이 글중에서도 여러 번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다. 즉 Evolver나 Poly Evolver, Prophet-08, Mopho, Tetra 까지 오실레이터/VCF/VCA 에까지 모두 같은 칩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단 Evolver나 Poly Evolver에는 디지털 시그널 패스를 사용하는 웨이브테이블 오실레이터와 HPF, Delay 등을 추가로 갖추고 있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전체 구성이나 시그널 패스를 보면 아날로그쪽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고, Evolver 시리즈에만 HPF, Delay(디지털 딜레이), Digital 오실레이터(웨이브 오실레이터) 등이 있어, 일종의 디지털 시그널 패스가 섞인 하이브리드 타입이므로 전체적인 시그널 패스는 Prophet-08과는 다소 다르다.
그리고 동일한 칩이 사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웨이브테이블 오실레이터와 HPF, Delay 등을 빼면 Prophet-08과 Evolver 시리즈는 거의 같은 것이라고 하는 의견도 종종 있고 필자도 Prophet-08을 구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Evolver와 Prophet 08, 두 개를 다 가지고 있었던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이 둘의 소리는 같지 않다. Prophet 08쪽이 더 둥글둥글하고 따뜻한 소리를 낸다. 이에 대해서 Dave Smith씨는 '비록 구성품들은 동일하지만 Prophet-08의 경우, 회로에 일종의 tweak이 가해졌고, 결과적으로 시그널 패스도 100% 동일하지는 않기 때문에 소리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소리는 정말 다르다. 필자가 Evolver로 만들었던 소리를 아무리 노력을 해도 Prophet-08로 똑같이 내지 못한다. 어느쪽이 좋고 아니고를 떠나서 말이다. 즉 두제품군의 신디사이저에는 분명히 개성의 차이가 존재하며 그 개성의 차이는 비교적 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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